오키나와현은 일찍이 류큐 왕국이라 불리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왔습니다.
책봉사를 대접하는 요리와 예능, 그곳에서 제공된 궁중 요리나 왕가가 마시던 술 아와모리, 연회의 꽃이었던 예능은 지금도 오키나와의 자랑으로 현민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류큐 왕국 시대에 이룩한 식문화와 예능은 ‘세대 변화’의 역사를 반영하며 연면히 이어지는 ‘슈레이(예절을 지키는)의 마음’이 계승되고 있는 류큐 왕국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01
류큐 왕국의 토대를 쌓아 올린
왕도·우라소에
일찍이 오키나와현은 류큐 왕국이라고 불리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왔습니다. 14세기경의 류큐 왕국은 호쿠잔, 주잔, 난잔이라는 3개의 소국으로 나뉘어 오키나와 섬을 둘러싼 항쟁이 펼쳐졌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세력은 현재의 우라소에시에 거점을 둔 주잔으로, 슌텐·에이소·삿토 3왕통이 번영했습니다. 주잔의 왕성인 우라소에 구스쿠(성)는 13세기경의 에이소왕 시대에 정비되었습니다.
훗날 삿토 왕의 시대에는 고려계 기와 지붕의 정전을 중심으로 돌담 성벽으로 둘러싸인 대규모 성을 이루었고 주변에는 왕릉·사원·커다란 연못·저택·마을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 무렵부터 마키 항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조공 무역을 시작하는 등, 해외 교역의 문을 열었습니다. 류큐 왕국 초기의 왕도·우라소에는 후에 대 교역시대를 맞아 동남아시아의 중계 무역 거점으로서 번영한 류큐 왕국의 토대를 닦은 도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라소에시에는 주잔의 왕성이던 ‘우라소에 구스쿠’나 초기 류큐국 주잔의 왕릉인 ‘우라소에 요도레’, 슈리 성과 우라소에 구스쿠를 이어주는 오래된 돌길 등 많은 사적이 남아있습니다.
훗날 삿토 왕의 시대에는 고려계 기와 지붕의 정전을 중심으로 돌담 성벽으로 둘러싸인 대규모 성을 이루었고 주변에는 왕릉·사원·커다란 연못·저택·마을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 무렵부터 마키 항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조공 무역을 시작하는 등, 해외 교역의 문을 열었습니다. 류큐 왕국 초기의 왕도·우라소에는 후에 대 교역시대를 맞아 동남아시아의 중계 무역 거점으로서 번영한 류큐 왕국의 토대를 닦은 도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라소에시에는 주잔의 왕성이던 ‘우라소에 구스쿠’나 초기 류큐국 주잔의 왕릉인 ‘우라소에 요도레’, 슈리 성과 우라소에 구스쿠를 이어주는 오래된 돌길 등 많은 사적이 남아있습니다.
02
무역 국가로서 번영을 이룬
류큐 왕국
15세기 초기, 주잔의 삿토 왕통을 제패하고 주잔 왕이 된 쇼하시는 호쿠잔·난잔을 제패하여 3잔을 통일한 후, 왕도를 우라소에 구스쿠에서 슈리 성으로 천도하고 이와 함께 무역 거점을 나하로 옮겨 류큐 왕국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왕도의 천도에 따라 무역의 거점이 된 나하 항은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와의 교역 거점이 되어 류큐 왕국의 발전을 지탱하였습니다. 슈리 성 정전 앞에 걸려 있던 ‘만국진량의 종’에 새겨진 ‘류큐국은 남해의 축복받은 지역에 있으며, (중략) 배를 조종해서 만국의 가교가 되고 외국의 귀한 물건이나 보물이 온 나라에 가득하다’라는 문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해외와의 교역을 통해 발전하고 예절을 지키며 중국의 책봉사 등을 맞이하였습니다. 또한, 나하 항 근처의 나하시 구메는 14세기경에 중국 복건 지방의 중국인 집단(민인 36 성)이 거주하여 당시에는 구메무라(구닌다)라는 중국인 마을이었습니다. 민인 36 성은 중국 등과의 외교를 담당하였으며, 류큐 왕국의 정치나 경제, 문화에도 다양한 영향을 주고 식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류큐 요리하면 빠지지 않는 돼지 사육이나 두부 제조법 외에도 시미(청명제)나 거기에 공양 되는 우산미(돼지나 닭, 생선 제사 요리)는 구메무라에서 왕부로 전해졌으며, 그게 일반 가정요리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지금도 시미 시기가 되면 현내 마트 등에서는 많은 우산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하 항 주변에는 당시의 항해 안전을 기원하는 덴피구 신사 터나 구메무라 600년 기념비 등의 사적이나 비석이 많이 남아 있어 당시의 흔적을 더듬어 찾아볼 수 있습니다.
03
슈레이(예절을 지키는)의 마음이 키운
궁정 요리와 류큐 예능
류큐 왕국 시대에는 류큐 국왕의 책봉(신국왕을 임명하기 위한 의례)을 위한 사절단인 책봉사가 류큐를 방문했습니다. 사절단은 총인원 400명 정도로, 약 반년간 오키나와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장엄한 책봉 의식 외에도 책봉사 체재 중에는 슈리 성 북전이나 덴시관 등 각지에서 ‘7 연회’라고 불리는 국왕이 주최하는 7개의 대연회가 열렸으며, 그곳에서는 30가지가 넘는 중국식 요리를 선보였습니다. 국빈 환대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은 요리사를 중국에 파견해서 배워오게 하는 등 힘을 쏟았으며, 류큐판 ‘만한전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요리는 국왕의 왕관을 가져오는 책봉사가 타는 배 이름에서 유래하여 ‘오칸센 요리’라고 불렸습니다.
이렇게 류큐 왕국 시대에 중국 책봉사를 대접하기 위한 요리가 태어났고, 조리 기술이나 만드는 방법 등을 연마한 ‘궁정 요리’로 확립되었습니다. 또한, ‘7연회’에서는 색채가 풍부하고 화려한 빈가타 의상을 입은 류큐 무용을 공연하고 후에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는 구미오도리가 탄생하여 공연했습니다.
한편, ‘7연회’ 이외에는 책봉사를 대접하기 위해 만들어진 류큐 왕가 최대의 별저·시키나엔이나 우차야우둔에서 선명한 붉은색의 류큐 칠기에 담긴 요리나 예능으로 책봉사를 환대했습니다.
이처럼 류큐 왕국의 식문화와 예능은 중국의 손님을 위한 ‘슈레이(예절을 지키는)의 마음’에 의해 발전해 왔습니다.
04
왕가가 마시던 술로서 현대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아와모리
15세기 무렵, 류큐 왕국은 동남아시아, 특히 샴(현재의 태국 왕국)과의 교역이 활발했습니다. 그 무렵 증류주와 그 제조 기술을 류큐에 가져왔다고 여겨지며, 15세기 후반에는 아와모리가 제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7세기, 아와모리의 제조는 슈리 왕부의 관리하에 있었습니다. 왕부 안에는 아와모리 제조를 관리하는 부서가 있었으며, 아와모리는 엄격한 관리하에 제니쿠라에 보관되어 책봉사 등의 접대용으로 선보여지는 등, 왕가의 술로 취급되었습니다.
또한, 아와모리의 큰 매력은 시간을 들이면 숙성된 매우 훌륭한 쿠스(고주)가 된다는 점입니다. 오래된 쿠스에 새로 만든 술을 부어서 그 향과 맛을 유지할 수 있는 ‘시쓰기’ 문화가 지금도 각 가정에 정착해서 제례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손님에게 대접합니다.
05
세대의 변화를 거쳐 지금도 연면히 이어지는
식문화와 예능
메이지 정부가 실시한 폐번치현으로 인해 약 450년의 역사를 보유한 류큐 왕국은 막을 내렸습니다. 류큐 왕국이 오키나와현이 된 후에는 류큐 왕국에 종사하던 요리사들은 직장을 잃었으나, 그 기술은 오칸센 요리나 사쓰마 지배의 영향을 받은 일본식 요리를 원류로 하는 류큐 요리를 슈리 지역에서 나하 지역의 사교장에서 펼쳐졌습니다. 류큐 왕국 시대부터 먹는 ‘나카미노오시루’나 ‘도후요’ 등 수많은 메뉴는 지금도 오키나와 현민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현민의 대표 음식인 ‘고야참플’이나 사기구스이(나쁜 것을 몸 안에서 배출하는 약)라고 불리는 ‘오징어 먹물국’ 등은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이념과 일맥상통하며 지금도 ‘누치구스이=생명의 약’, ‘구스이문=약이 되는 것’으로 생활 속에 뿌리 내려 식당 등의 인기 있는 메뉴입니다.
또한, 지금은 인기 오키나와 선물인 ‘친스코’나 오칸센 요리에서도 나오는 ‘깃판’등의 류큐 과자가 류큐 왕국 시대부터 대대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슈리의 한정된 지역에서만 제조가 허용되던 류큐 아와모리는 현재는 이도를 포함한 현내 각 지역의 양조장에서 제조되고 있으며, 양조장 견학이나 시음 체험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한편 오키나와는 ‘예능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로 노래나 춤이 발달한 지역으로, 피로연 등의 행사 때에는 반드시 예능이 선보여지는 등, 오키나와 현민에게 예능은 가까운 존재이며 일상적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국립극장 오키나와(우라소에시)에서는 류큐 무용이나 구미오도리의 정기 공연도 시행되고 있어서 간편하게 오키나와 예능을 접할 수 있습니다.
나하 시내에는 지금도 예전 책봉 사절단의 환대와 마찬가지로 류큐 무용 등의 예능을 감상하면서 류큐 요리나 아와모리를 즐길 수 있는 오래된 요정 등도 있어 오키나와의 음식과 예능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류큐 왕국 시대부터 자라난 국제적인 음식과 예능 문화는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지금도 오키나와 현민이나 국내외의 관광객들을 매료하고 있습니다.